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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月 5日
Asia Foundation에 전화. Industrial secret clearence의 건. Lockheed 회사로 문의하기로 합의.
며칠 전 한만섭씨 댁에서 dinner 파아티. 한씨의 처남 이한빈씨, Swiss 대사 직에서 귀임. “어, 내가 문제가 많이 있어요. 그 중에는 이해가 가는 것도 있고, 또 전연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어요. 어디 우리나라의 민생고가 어려워졌다니, 한번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좀 해봐요." 왕년의 이승만씨를 연상케 한다.
미래를 위한 설계. 1934. 1. 3~1965. 6. 5 31yr.
현재의 조건 : 31세. 결혼 초년. 10월에 2세 출산. 직업: 공군대위. 공사교관, 항공역학, 서울대학교 대학원 강사, 조선항공과, 물리과. 月收 9천 원. 적자생활. 주택 없음. 차 없음. 자전거 없음. 학력 B.S.A.E., Seoul National Univ. ; S.M., Ph.D., Harvard Univ.
phase 1 1965. 6~1966. 8
수학과 경제학에 주력.
공사와 서울대학교에 계속 근무.
phase 2 1966. 9~1968. 6
M.I.T. 전기과에서 Computer Science 연구 “Engineers degree” 목표
phase 3 Industry에서 근무
1968. 9~1976. 9
phase 4 Harvard / M.I.T.에서 Political Science 연구. Ph.D. 목표.
1976. 9~1978. 9
phase 5 1978.10 귀국. 44세.
6月 6日 일요일
일요일 아침 조조할인으로 단성사. "Love with proper stranger." 임신 5개월의 아내와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뻐쓰로. 배가 고프지만 점심은 다시 집으로 온 다음에야 있다.
구직 : Lockheed, McDonnel, M.I.T., NASA, Chico, Louisville?
Industrial Secret Clearence? U.S. Citizen ship?
不信! 그들이 나쁜 것도 아니고 내가 나쁜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불신의 시대에 태어난 것뿐이다. 국가와 국경을 초월할 수 없는 유치한 인류사회에.
객관적으로 볼 때 현 위정자들에게 아무리 잘못이 있다 해도, 그들의 무지로 인해서 한국민 전체를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한국 국민, 불우한 한국 사람들 중에서 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의 하나로서 높은 사명감을 갖고 생존을 위한 용기를 계속 발휘해서 장기계획을 하나씩 실천에 옮겨야 한다.
6月 7日
공군병원에서 눈수술. 안막 결석증.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의 하나이다.
6月 8日
서울대학교 강의 휴강. 눈이 회복될 때까지. 이대 부속병원에서 눈 치료. 치료비가 50원을 넘을까봐 초긴장.
6月 9日
결근. 이대 동대문 부속병원. 안과 트라홈. 결막염, 결석증, 각막염.
6月 19日
이날까지 병가로 계속 결근.
어디로? 정치는 경제와 마찬가지로 Applied Science에 속한다. Research보다는 Application에 치중하기로 방침을 세운 이상 가장 효과적인 결정적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분야는 정치이고 다음이 경제이다. 비약이 너무 무모하여 파열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충분히 강력한 자는 생존할 것이고, 경쟁에 지는 자는 도태된다. 두려울 것 없다. 결단과 용기와 인내와 노력이다.
생계: 병아리 사업을 할려면 변두리로 이사를 가야 한다.
Mathematics, Fluid Mechanics, Economics, Continuum Dynamics, Computer, Engineer's Degree.
1965年 6月 20日
박철에게 :
소식이 통 없으니 우에 됐노. 월여전에 내가 보낸 편지가 들어갔는지 Communication failure가 아니라면. 철이의 뜻을 짐작할 수 있다. 그때 편지에 NASA로 가고 싶다 했는데 나는 사실 아직도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내가 Professional Politics에 involve 되는 것이 어처구니없는 모험일지 우리 모두를 위해서 보다 나은 service가 될지 그것이 문제다. 나에게 advice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 金철수 선생은 찬성하였으나 크게 섭섭하신 모양. 내 생각에는 철이도 찬성하고서 그 뜻을 전하기 위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회에서 새로운 병역법이 통과되어서 전 가족이 외국에 이주하게 되는 경우에는 병역복무 기간에 관계없이 전역 및 免役이 되게 되었다.
인구문제 때문에 이민을 장려하는 거지. 따라서 나도 이제 자유롭게 출국할 수 있게 되었다. 1966 가을부터 M.I.T.에 가서 Computer Technology와 Information processing에서 2년간(Engineer Degree) warming up 한 다음에, 5~6년간 적당한 자리에서 경험을 쌓고 다시 Harvard로 와서 Political Science와 Economics(Taking maximum advantage's of the memorizing and analysing capacity of a modern Computer) 2~3년간(Ph. D) 공부하여 귀국하여 40 전후에 political affair에 투신하는 것이 한 가지 계획인데 …… 이대로 실천된다는 것 어려운 일이겠지. 재원이 확보된다면 위의 중간단계(5~6년)는 생략할 생각이다. Alternative procedure는 지금 가까운 장래에 teaching position이나 assistant, 그밖에라도 학비를 save할 수 있는 job이 나타날 경우인데, 위의 plan의 final stage(2~3년간)도 직접 이행하는 것이다. 철이의 advice를 듣고 싶다. Sung~Park jump의 이야긴데,(여기에 그림 삽입할 것) ……을 semiempirical universal law로서 확립해 보고 싶은데, 한국에서 g-effect를 실험한다는 것은 곤란하다.
υ-effect의 실험도 여기서는 만만치 않다. Tani의 υ-effect 실험결과는 잘 맞는다. 1.49는 물론 실험에 맞도록 Refine 될 수 있는 문제이지만 universal constant(h, c 등의 四寸은 물론 근처도 안 갔지만)여야 한다.
나의 job hunt에 계속 협조해주기 바란다.
p.s.: 한만섭氏가 S. N. U.에 Ph. D. 학위신청을 했는데, commettee가 이량, 김재근, C.S.Kim, Sung 그리고 ×××(원자력연구소 유체역학 Dr.)로 구성됐다. 9월 수여가 틀림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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